세계가 놀란 크리스천 음악계 디바 - 소 향 (CCM가수, 큰믿음선교교회)

 

7일 올림픽홀서 데뷔 10년만의 단독 콘서트 열어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세계 선교 종횡무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중 최고의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다. CCM가수 소향의 찬양을 듣고 있으면 그 말이 쉽게 이해된다. 소향은 크리스천 음악계에서 시작부터 기대주였다. 20세 때 CCM사역자로 활동을 시작해 번안곡인 ‘반석 위에’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향 1집과 포스 4집에 이르기까지 ‘피난처’ ‘나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Untitled’ 등으로 모든 앨범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10여 년의 활동 동안 소향은 포스(POS)라는 밴드의 보컬로, 또 CCM을 대표하는 여성가수로 탁월한 가창력을 발휘해왔다.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고 불릴만큼 파워풀한 가창력과 영성을 겸비한 소향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LA, 워싱턴, 시카고, 시애틀 등 미주투어, 벤쿠버, 토론토 등 캐나다 투어,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 많은 무대를 서면서 복음을 전했다. 보이즈 투 맨(Boys ll Men)의 프로듀서인 ‘제프리’와 함께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어 데모 작업을 했고, 마이클 볼튼, 스티비 원더 등 이들을 가르친 보컬 트레이너계의 대가 ‘세스 릭스’에게 ‘미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동양가수‘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가족 밴드인 포스는 1996년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2000년부터 해외선교에 힘을 쏟았다. 10여 년 동안 국내와 국외 공연을 순회할 때마다 대형 공연장을 전회 매진시키고 가는 곳마다 신드롬을 일으켰다. 소향은 지난 4월 20일 가스펠 최고의 영예 그래미워어즈 가스펠 콰이어 부문을 다섯 차례나 수상한 세계 최정상급 콰이어 브룩클린 터버너클 콰이어가 있는 뉴욕 브룩클린 터버너클 교회에 아시아인 최초로 초청 콘서트를 가졌다. “처음 노래할 때부터 한명이던, 수천명 앞이던 똑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이 날도 무대에 서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찬양했어요. 노래를 마치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하는데 그 순간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야겠다는 부담에 두렵고 떨렸죠. 이제 영어앨범을 만들 때가 왔고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소향은 고3때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찬양사역자의 꿈을 품게 됐다. 소향이 속해있던 선교단의 연습실이 큰믿음선교교회로 옮기면서 포스를 만났고, 포스의 보컬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큰믿음선교교회 김길동 담임목사님이 제 시아버지시고, 포스에서 드럼을 치는 형제가 제 남편이에요. 시어머니께서 15년 전 대장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으셨는데 기도하던 중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나 생각하시다 춤으로 찬양을 드리는데 하나님의 빛을 보셨어요. 성전에 가득 찬 빛을 보시면서 너희 자녀를 통해 악기를 가르쳐 찬양하게 하라는 음성을 받은 후 치유받으셨어요. 그 때 지금의 포스가 만들어 진거죠. 시부모님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해주시고 시누이는 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를 치고 남편은 드럼을 맡고 있어요”

 소향은 포스에서 보컬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스무살 때 결혼했다. “남편과 제가 동갑인데 스무살에 결혼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말리는게 당연한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시어머니에게는 3년 전에 믿음의 딸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데요. 축복 속에 결혼하고 2개월 후에 병원에 가보니 자궁암이 발견된거예요. 바로 수술을 했는데 아마 그 때 암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소향은 결혼후 활발한 사역과 함께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를 시작했다. “10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어요. 몰래 하나님을 만나서 데이트하는 기분이랄까? 그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말씀들이 너무 좋았어요. 늘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훈련시키신거죠”  

 7일에는 올림픽홀에서 데뷔 10년만에 첫 단독콘서트를 갖는다. CCM가수로서 대형 공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벌써부터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이슈를 만들고 있다. 소향 파워콘서트에는 일반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유리상자, 다이나믹 듀오가 게스트로 나서 일반인에게도 자연스레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제 공연이라는 생각이 하나도 안들고 이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기대돼요. 공연을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군사들을 10명이상씩 세워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10명이 아니라 수많은 헌신자들이 나왔어요. 이번에도 하나님의 군사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소향은 지금 미국에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영어 음반 제의가 들어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우리나라보다 CCM시장이 500배나 큰 미국에서 활동할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미상을 받아서 안믿는 사람에게 더 영향력 있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요.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9월에는 아르헨티나순복음교회 30주년 행사와 브라질, 파라과이에서 연합 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다. “각오가 있다면 교만을 떨어뜨리고 겸손하는 사역자가 되길 바래요. 예수님이 낮은 곳을 택하셨듯 겸손한게 쉬운거죠. 바닥에 있으면 떨어져도 다치지 않지만 위에 있으면 매순간 위험하잖아요. 끝까지 하나님 안에서 그분만 나타내고 싶고 겸손을 배우고 싶어요. 그게 가장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인것 같아요”

by 미나꼬 | 2008/06/16 21:43 | 미나가 만난 사람들 | 트랙백 | 덧글(2)

주대준 장로(대통령실 경호차장, 여의도순복음교회)

“하나님이 이끄신 법칙은 바라봄이었죠”

청와대에 u-IT 적용, 세계 최고의 경호로 만들어   
17년 전 청와대기독선교회 창립해 복음화 앞장서 
저서 ‘바라봄의 법칙’ 통해 선교비전센터 세울 것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입학과 취업, 결혼과 승진 등 많은 인생의 목표와 꿈을 세우며 성공을 꿈꾸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이라는 열매가 주어지고 또 어떤 이에게는 실패라는 쓴 뿌리만 남겨진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산골소년이 있었다. 그는 최첨단 u-IT(유비쿼터스 정보기술)기술을 청와대에 적용시켜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경호처(이전 정부 : 대통령경호실)을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호전문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그 주인공은 대통령실 경호차장 주대준 장로다. 그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요셉을 인생의 모델로 삼았고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 정보화의 불모지였던 청와대를 오늘날 정보화의 산실로 탈바꿈 시켰을 뿐 아니라 청와대기독선교회를 창립해 청와대 복음화에 물꼬를 텄다. 또한 한국기독공직자선교연합회 대표회장, 한국직장선교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사회의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대준 장로는 국방정보사령부 전산실 직원으로 시작해 청와대 정보통신처장에 오르고, 행정본부장을 거쳐 참여정부에서 대통령경호실 차장으로 승진 후, 이명박 정부의 경호차장으로 임명받기까지 오직 기도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꿈을 이뤘다. 그가 말하는 성공 키워드는 ‘바라봄의 법칙’이다. 최근 그가 저술한 ‘바라봄의 법칙’은 국내서점에서 종교부문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 장로는 지리산 산골소년으로 태어나 어린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독한 경제적 고통과 외로움을 참아내야 했다. 힘겨웠던 어린시절 거제도의 한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20대 후반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서 조용기 목사님을 만나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영적 비타민을 섭취하게 됐어요. 평신도성경학교 공부를 하면서 방언도 받고 성령을 체험하면서 현실적 환경에 낙심하고 절망하기보다는 비전을 품고 꿈꾸며 달려가는 자로 살 수 있었죠” 그의 바라봄의 법칙은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 1970년대 후반에 컴퓨터, 정보기술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그는 성경 속 요셉을 모델로 삼고 요셉이 남의 땅 애굽에 가서 총리대신이 된 것처럼 청와대 입성을 꿈꿨다. 청와대에 전산실이 창설되기 이전부터 전산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며 바라봄으로 실력과 마음가짐, 향후 청와대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삶의 자세와 태도 등을 갖췄다. 청와대를 바라본 지 10년 후, 그는 마침내 대통령경호실의 전산실 개발팀장으로 임명됐고 지금까지 18년째 근무하고 있다.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으로 맞추는 순간 삶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더 노력하며 겸손하게 행동했고 바쁜 업무 중에도 자기개발에 힘을 쏟았다. 40대에 10년을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올인한 주 장로는 만 50세에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결국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삶이 움직였고 선진 경호기법인 유비쿼터스 과학경호시스템을 청와대에 구축할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호시스템은 세계 최고의 경호전문기관으로 인정받아, 2010년 제10회 APPS(세계 경호책임자회의) 대회 개최지로 청와대가 확정됐다.   

 이런 열매에 앞서 그는 찬송과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다. 주 장로는 청와대에 들어온지 1년이 조금 넘어 청와대기독선교회 창립을 주도했다. 6공시절 청와대내 선교회 창립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교에 목숨 걸었던 사도바울과 애굽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 궁에서 일하며 선지자들을 도왔던 오바댜를 생각하며 청와대와 공직자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갖고 기도로 준비했다. “청와대에서 내가 맡은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업무이며 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말씀대로 맡은 업무에 세계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졌지요” 1991년 12명으로 시작한 선교회는 지금 200여 명으로 부흥했다. 청와대기독선교회는 정기적인 주간기도회와 월례예배를 드리며, 시간이 날 때 교도소, 보육원, 노숙자들을 위한 다양한 선교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창립이후 지금까지 청와대선교회를 이끌면서 억울한 오해도 많이 받았고 청와대에서 내보내겠다는 압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수 광신도라는 따가운 눈총이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하나님은 결국에 더 높은 자리로 옮겨주셨다. “공직생활 해 오는 동안에 종교문제로 때로는 상사가 나를 안 좋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일하고 상관에게 더욱 충성했죠. 상관도 역시 내가 구원시켜야 할 선교대상자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못 마땅해 하던 상관들도 저를 인정해주고, 많이 도와주더라구요. 하나님이 기도를 많이 시키셨어요. 퇴근하면 삼각산 산기도를 다니면서 많이 부르짖었죠. 그 때 하나님이 청와대 선교를 위해 나를 이 곳에 보내셨다는 사명을 깨달았어요” 그가 말하는 직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무슨 일을 하던지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라는 것, 하나님이 직장 선교를 위해 이 곳에 보내셨다는 사명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사명감이 우러나오게 된다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청와대 복음화에 두 팔을 걷어붙인 주대준 장로는 지금 새로운 꿈을 품었다. “앞으로 청와대 주변 광장이 시청 앞처럼 바뀌고,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거예요. 앞으로 기회가되면, 이 주변에 선교 비전센터를 세워 청와대 주변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맡고 있는 청와대기독신우회와 공직자선교연합회, 한국직장인선교연합회의 선교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 지역에 24시간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할 계획입니다”

 주 장로는 이미 선교비전센터가 완공되어 선교하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며 바라보고 있다. 그의 저서 ‘바라봄의 법칙’의 수익금은 전액 센터기금으로 사용되어진다. 오히려 책 수익금 외 주 장로 봉급의 10%를 센터 건축헌금에 추가로 작정했다. 

 꿈과 사명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곳에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주대준 장로. 아무리 큰 산이라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반드시 넘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깊이 남았다. 기도하는 청와대가 있기에 우리나라는 분명 잘 될 것이라는 가슴 벅찬 희망과 우리도 우리가 속한 곳에서 꿈꾸는 요셉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해 청와대로 간 요셉을 만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by 미나꼬 | 2008/06/16 21:42 | 미나가 만난 사람들 | 트랙백 | 덧글(1)

설동순 권사(순창전통별미고추장 대표·순창읍교회)

 

“하나님이 주신건데 무엇이 아깝겄어?”

전통비법 고수해 순창전통별미고추장 만들어
하나님께 순종하고 목회자 섬기는 게 성공비결


태조 이성계가 처음 맛 본 이후 조선시대 궁중진상품으로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순창 고추장. 전라도 순창에는 순창고추장전통민속마을이 조성됐다. 공기 좋고 물 좋아 일품 고추장이 나온다는 이 마을에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 장을 만드는 고추장 제조 기능인이 있다. 바로 순창전통별미고추장 대표 설동순 권사다.

 설동순 권사는 1991년 2월 순창전통고추장 제조 기능인으로 지정 받았다. 4년 전에는 저서 ‘힘 펄펄나는 매운 밥상’을 출간하고, 2005년 10월부터 영농조합법인 순창전통고추장연합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37개의 고추장 사업체들이 모여있는 이 마을에서도 유독 설 권사의 사업체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여 평의 넓직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고추장과 된장, 청국장과 여러 종류의 장아찌들이 담긴 커다란 장독들이 줄맞춰 늘어서있다.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이하는 설동순 권사는 인심좋은 푸근한 이웃 아주머니 같은 인상이다. 방안에 활짝 펼쳐놓은 성경책을 보니 이 마을에서 으뜸 사업체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4남매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 몰래 교회에 다녔제. 그 때부터 늘 내 마음속엔 하나님이 계시는 걸 느꼈구만.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너무 찢어지게 가난한거여.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봉사도 했지만 그땐 정말 가난했었지. 하지만 목사님께는 늘 뭐라도 드리고 싶드라고. 과일 하나라도 먹고 싶으면 목사님 것 먼저 사고 내 것을 샀지. 목사님 것을 먼저 못드리면 차라리 안먹어버리고 말았응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던 그에게 23년 전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목에 밤알만한 몽우리 3개가 생기더니 곧 5개로 늘어났다. 병원에서는 조직검사를 권했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네명의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졌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저는 병원에 돈 못줍니다. 그 돈 있으면 더 어려운 사람을 돕겠습니다.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불쌍한 죄인 하나님의 뜻에 맡깁니다’하고 기도했구만. 세상 것은 아무 필요 없잖여” 보름 후 밤알만했던 몽우리들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기도응답의 체험을 하고 그는 바로 빚을 내 교회에 종탑을 세웠다.

 하나님이 하시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강한 확신을 얻은 설 권사는 어머니한테 전수받은 전통 고추장 제조비법으로 고추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100% 우리나라 재료로 만든 전통 비법을 고수했고 검붉은 색깔에 알싸한 맛을 내는 순창전통별미고추장을 만들었다. 설 권사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늘 어려운 교회를 돕고 선교하겠다고 다짐했다. 워낙 없는 살림이다보니 시작은 쌀 한 가마니가 전부였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욥기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시작하니 판로가 열리고 손님이 줄을 섰다. “빚을 내서 어렵게 시작했제. 개업 첫날 심방 온 목사님께서 ‘앞땅과 뒤땅, 옆에 있는 땅과 집을 모두 살 수 있도록 번창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셨는데 그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진거여.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 앞땅 뒤땅 옆땅을 모두 사부렀응께” 순창전통별미고추장은 단숨에 순창고추장 내고장 일품지정, 전라북도 최고명품 인증, 한중간 발효식품국제박람회 대상, 문화일보 주최 김치박람회 발효식품부문 금상 등 각종 국제식품 전시회에 참가해 명성을 쌓았고 방송과 신문사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했다.

 또 한번의 체험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몇년 전 정기검사 결과 폐에 점이 발견됐고 병원에서는 일종의 암 종류로 추정했다. 그는 바로 하나님께 다시 엎드렸다. “기도하라고 채찍이 왔는 감만. 성경 읽고 찬송부르니께 뜨거운 눈물이 나더라고. 한푼이라도 있음 목사님 선교사님 섬겨야제 억울해서 병원에 돈 못갔다주겠습디다” 보름 후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가보니 폐는 깨끗하고 건강했다. 이 두번의 체험은 그를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사업가로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여러 곳에 선교 후원을 하고 있다. 국내 미자립교회와 인도, 러시아에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을 후원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의 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사업장에 목사님이 찾아오면 장아찌 하나라도 더 챙겨주며 기뻐한다. “무슨 욕심이 있간디. 방 한칸 사글세방도 못얻다가 지금 논, 밭사고 200평 사업장을 이끌고 있으니 모두 하나님이 주신거제. 기도받는 걸로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으니께 주의 종 섬길 수 있어 감사할 뿐이여” 설 권사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력 불우이웃돕기, 전국기독교단체바자회 등 이웃돕기 행사에도 적극 동참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설동순 권사의 입술에서는 늘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갈 때도, 고추장을 담글 때도, 메주를 만들 때도, 손님을 맞이할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오묘하지? 백개, 천개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아. 살아있다는 것, 건강 주신 것, 무엇보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무엇이 아깝겄어? 너무너무 감사할 뿐이제. 우리가 할 것은 순종 뿐인거여. 정말 놀라운건 뭔지 알아? 하나님께 드리면 필요한 만큼 채워주신다는거여. 한번 해봐. 그러믄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응께”   

<순창전통별미고추장 063-653-3759> 

by 미나꼬 | 2008/06/16 21:41 | 미나가 만난 사람들 | 트랙백 | 덧글(1)

고은아 권사(서울극장대표·예능교회)

 

한국 영화 주역에서 복음 전하는 일꾼으로

‘새롭게하소서’ 진행, 예수님 향기 전해
늘 순종하는 마음으로 맡은 일에 최선

CBS의 신앙간증 프로그램인 ‘새롭게하소서’는 28년 동안 8400회가 넘게 방송된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장수 프로그램 ‘새롭게하소서’의 최장수 MC 고은아 권사. 올해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빡빡한 방송일정에도 지친기색조차 없다. 바쁜 일정에도 늘 환한 웃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고은아 권사는 1965년 영화 ‘난의 비가’로 데뷔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최고의 여배우였다. 1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60∼70년대를 평정하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지만 지금은 연예계의 스타가 아닌 어두운 곳을 밝게 비취는 스타가 돼 우리앞에 섰다. 서울극장 대표, 기아대책기구 이사(행복나누기 대표)인 고은아 권사는 지난해 10월 ‘새롭게하소서’의 진행을 다시 맡았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15년동안 ‘새롭게하소서’의 진행을 맡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제일 중요할 때 가장 긴시간을 이곳에 보냈기 때문에 남다르게 느껴진 특별한 방송이었어요. 사업에 전념하다가 12년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됐죠”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일이 너무나 즐겁고 감사하다는 고은아 권사. 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열심있는 신앙인이 아니었다. “1975년에 어머니를 모시러 기도원에 갔다가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는데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평생에 해보지 않은 회개와 방언이 나왔어요. 배우로도 그런 역할을 해본적이 없는데 펑펑 울면서 회개했죠. 제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죄인이라는 것과 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고은아 권사는 그 이후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됐다.

 고 권사는 1979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에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하나님이 주실 새로운 일을 기다렸다. 기도로 준비하던 그 때에 ‘새롭게하소서’ 제작진으로부터 MC제의를 받게 됐다. 그렇게 15년동안 진행을 맡아오며 크고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1997년부터 서울극장 대표를 맡게된 고은아 권사는 2005년 ‘사랑의 초대’라는 극장예배를 통해 기독교 문화의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팝 오케스트라 연주, 힙합공연, 라이브공연 등과 은혜로운 말씀은 관객들의 많은 호응 속에 진행됐다. 1개 상영관으로 시작한 서울극장이 11개 상영관이 됐으니 상영관에서도 십일조를 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매달 한번씩 12번을 채우며 많은 사람들과  은혜를 나눴다. “극장에 가자고 하면 누구나 좋아하시잖아요. 믿지 않는 이웃들을 전도할 수 있는 곳으로 삼고 싶었어요. 공연시설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관객들이 너무 좋아해주셨고 마지막 예배가 끝난 후에는 서운하다며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도 계세요”

 그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자 기적이었다”고 고백한다. 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가 된 것,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기독교방송의 진행을 맡게 된 것, 행복나누기 대표가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2006년 12월에 아프리카 봉사를 다녀온 후로 지난해 3월 인도 빈민촌으로 봉사를 다녀왔다. 평소에도 오래 앉아있는게 힘들었는데 연이은 고된 봉사활동으로 몸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허리가 아파서 6개월동안 매일 아침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오랫동안 앉아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치료를 받게 하시고 체력을 만들어주신거예요. 처음에 방송국에서 제의가 왔을 때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고, 눈이 안좋아 강한 조명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거절했었거든요”

 거듭된 요청에 방송을 결정하고 녹화 첫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힘들기는 커녕 새 힘이 솟아났다. 물론 밝은 조명을 오랜시간 보고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크리스천 영화인인 그에게 기독교 문화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1200만 명의 성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목사님들도 기독교 영화라면 반액을 하라고 하시거나 교회에 와서 상영하라고 하실 때마다 너무 안타까워요. 그러면 기독교 문화가 성장할 수가 없잖아요. 영화는 영화답게 시설 속에 들어와 그 사운드로 봐야 감동할 수 있어요. 기독교 문화에 힘을 실어주시려면 기독교 공연이나 영화는 내 돈 내고 정상적으로  봐주셔야 해요”라고 말한다. 고은아 권사는 기독교영화 제작이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3년 째 기독교 영화제를 지원하고 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하나님은 언제나 공기처럼 호흡 속에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세요” 늘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온 고은아 권사. 그의 비전을 봐도 그가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늘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만 했어요. 오늘은 제가 ‘새롭게하소서’를 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바탕이 되어서 하나님이 다른 일을 시키시면 저는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by 미나꼬 | 2008/06/16 21:40 | 미나가 만난 사람들 | 트랙백 | 덧글(0)

이병도, 홍미엽 집사 (안산 역사웨딩홀 대표, 죽전 순복음성시교회)

“하나님이 연출하신 특별한 예배 보실래요?”
스킷드라마 통해 열린예배 부흥시켜  
남편은 성극, 부인은 성화 작가로 헌신
     


 TV 속의 드라마는 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각 방송사에서는 황금 시간대에 드라마를 편성하고 많은 예산을 투자해 시청률 올리기에 주력한다. 드라마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돌아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희곡 작가인 이병도 집사는 드라마를 예배에 도입했다. 10분이내의 촌극인 스킷드라마를 예배에 접목시켰고 한국교회의 예배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0년전 교회에서 드라마는 마리아와 요셉, 예수님이 등장하는 성탄절과 부활절 성극이 전부였어요. 특별한 날 보는 성극이 아닌 일반 예배에서 드라마를 시도했죠.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픈 비전을 가졌죠” 스킷 드라마는 성도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역할을 했고, 성도들은 드라마를 보고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체험했다.   

 이 집사의 스킷드라마는 1997년 온누리교회에서 시작됐다. 드라마와 함께 접목시킨 열린예배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60여 편의 드라마는 교회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비신자들이 편안하게 예배를 즐길 수 있게 했고, 열린예배를 도입하는 교회도 점점 늘어났다. 이 집사는 전문적인 사역을 위해 2001년 드라마선교회 ‘필그림’을 만들었다. “보는 사람은 10분, 20분짜리 드라마지만 많은 시간과 훈련된 일꾼이 있어야 해요. 주일 예배 끝나고 서너번 모여서 연습하는 거로는 부족해요. 필그림선교회가 생긴 가장 긴 가장 큰 원인도 전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도 스킷드라마를 하고 싶은 팀이 있으면 구성해주고, 배우들 교육시켜주고, 정착될 때까지 이끌어주는 사역을 하고 싶어요. 작은 교회에서도 3∼4개월만 지나면 스스로 극작과 연출, 연기가 가능하거든요”

 5년 동안 스킷드라마를 가지고 전문적인 사역을 하며 미자립교회와 농어촌의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녔다. “복음을 전하면서 단원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어요. 너무 큰 은혜를 받아 배우들이 선교사와 목회자가 돼 지금은 활동을 잠시 쉬고 있죠. 스텝들은 모두 남아있으니 배우만 모이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겁니다. 필그림 선교회를 복구해 전국을 다니며 계속 선교하고 싶어요”

 이병도 집사의 가족은 모두 특별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그의 부인 홍미엽 집사는 성화를 그리는 화가다. 서울 미술제, 서울 봄전 등 전시회를 갖고 2004년 12월에는 크리스마스 2인 초대전을 했다. 올해는 제 15회 대한민국 기독교미술대전 기념 대한민국 크리스천 작가 초대전에서 북한 결핵어린이를 돕기 위한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그의 외동딸인 이진화 양은 인기 밴드‘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여성보컬 ‘허밍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영혼이 담긴 노래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각오로 대중가수가 돼 최근 개봉한 영화 ‘내사랑’의  OST ‘하와이안 커플’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병도 집사는 가족에게 달란트를 주시고 찬양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한다. “저는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희곡을 쓰게 됐어요.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제가 조금씩 다듬어졌죠. 특히 제가 2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한 3년은 저희 가족 모두가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큰 변화의 시간이었어요. 그곳에서 순복음교회를 다닐 때 초교파 금식성회에 갔다가 주변 사람들이 은혜받는 걸 보면서 저와 제 아내도 크게 깨어졌어요. 성령을 인격적으로 모시게 됐고 넘치는 은혜를 받았죠. 얼마 후 조용기 목사님 성회가 있었는데 엄청난 변화와 기적이 일어났죠” 

 홍 집사는 그 때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 대한 비전을 갖게 됐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이 변화받고, 도저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 180도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죠. 조 목사님 성회 포스터를 그리게 됐을 때는 1시간을 통곡하고 울면서 기도했어요. 그 당시의 은혜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나요. 그 뒤로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명을 갖게 됐어요” 홍 집사의 중보기도는 이병도 집사의 사역에도 든든한 힘을 실어줬다. 

 이병도 집사는 교회를 이끌어갈 젊은 청년들에게 ‘비전을 세우고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성공한 사람이 교회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연출가로 모셔야지만 예배 드라마를 할 수 있어요. 세상 드라마하고 성전에 올려지는 드라마는 내용이 비슷해도 분명히 달라요. 반드시 성령님이 중심이 돼서 이뤄져야만 예배극으로 세워질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예배극으로 아무런 힘이 없어요”

 이 집사는 성극을 통해 홍 집사는 그림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집사는 현재 웨딩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역을 위한 펜을 놓지 않고 있다. 요즘 여름방학 수련회 때 쓸 수 있는 어린이 연극 대본을 집필 중이다. 또한 지금까지 나온 60여 편의 스킷드라마 대본을 다시 작업해 책으로 편집할 예정이다.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더 다양한 성극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우리나라 예배의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다. 

 

 

by 미나꼬 | 2008/06/16 21:38 | 미나가 만난 사람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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